이글루스 | 로그인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이덕일저/ 마리서사(2005)


 

 

===============================================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Ⅰ. 들어가는 말

민심은 천심인가 - 역사를 이끄는 주체는 무엇일까? 

역사를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주체는 무엇일까. 민심(일반민중)일까 소수 엘리트 권력집단의 힘일까 가끔 궁금증을 갖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동양권의 유교적 관점에서는 민심천심론을 들고 왕이 등극하는 것 자체도 천심이라는 명분을 주고 있다. 과연 대다수 국민여론이 원하는 민심이 정책에 반영되고 민심을 천심과 같이 두려워하며 정책을 시행하여 왔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민중의 고통은 외면한 채 소수 권력집단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시스템을 틀어쥐고, 심지어 민심을 조작하거나 통제하면서 그들 중심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이 사실이다.

맹자는 왕권이 그릇된 길 즉, 천심을 어길 때 민중혁명에 의한 왕권교체가 정당하다 주창하여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심이 들고 일어나는 경우는 사회가 곪을 대로 곪아 더 이상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에만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프랑스 대혁명이나 러시아 민중혁명의 경우 당시 집권층이 조금만 도덕성을 회복하여 모범을 보이기만 하였어도 집단적 폭동(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극명하게 역사를 바꾸는 길은 혁명과 쿠데타라 할 것이다. 혁명은 급진적 개혁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음에 비해 쿠데타의 경우 그 목적이 개혁적 방향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왕권강화나 반대파 숙청을 위한 친정쿠데타가 종종 일어난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라 정의하고 있으며, 또 다른 사관은 ‘힘없는 민중과 권력계층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발전해 왔는데 발전이란 말은 관점에 따라 그 개념이 모호해지는 주관적 표현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인류역사의 발전이란 개념을 크게 국민의 자유권, 평등권 등 인권을 폭넓게 확보해 가는 과정이라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응전이나 투쟁이라는 표현도 사실 일반 민중의 삶의 질 확대를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인류역사에서 획기적인 인권신장은 귀족세력 등 기득권층과 민중과의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결과일 것이다. 최근의 우리역사에서 4.19민주혁명과 6.29선언을 이끌어낸 시민운동 등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 없이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형태는 양심있는 왕이나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는 고급관료가 민중의 편에 서서 개혁을 주도할 때 일 것이다.

개혁은 한마디로 소외받는 국민의 권익을 신장해 주는 일련의 조치라 정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의 후생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기득권층이 그동안 향유하고 있는 권력과 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항과 반발 때문에 성공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이책,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의 사례를 들고 현실정치와 비교하여 반면교사로 삼고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통찰력으로 삼국통일의 과업에서부터 현 정부의 개혁정책까지 다양한 개혁프로젝트 사례를 역사적 고찰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상 개혁을 시도한 개혁세력의 시도가 실패하거나 성공한 요인을 살펴보며 정치권 다음으로 국가경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관료집단(공무원)이 개혁의 성공을 위해 어떠한 자세와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였다.


저자의 제언 - 정조의 창조적 개혁을 본받아야..

먼저 저자는 2002년 12월 선거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글(2003. 1월 월간중앙)을 당시의 원문 그대로 전재하면서 현 정권이 직면한 개혁의 난제를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케 하고 있다.

이글에서 저자는 김영삼 정권부터 시작된 문민정부의 역할을 열거하며 특히, 개혁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김대중 전대통령이 조선조 태종과 같은 악역을 담당했어야 하였다는 아쉬움을 표명하며 그러한 악역이 역사적으로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부여 받은 임무는 해방이후 장기집권과 군부독재가 계속되면서 구조화된 여러 병폐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병폐들을 청산하는 대신 세종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바로잡기(과거사 정리)는 김대중정권에서 정리를 하였어야 했는데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이를 미루어 노무현 정권에 큰 짐을 넘겨준 꼴이 된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의 열망과 수평적 정권교체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집권 후기 극심한 이념 대립 등 갈등의 골을 깊게 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에게 무리한 개혁보다 정조대왕식의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화해를 통한 포용정책을 펼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정조시대와 비교하기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정조는 23년간을 재위하면서 자신의 개혁드라이브를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추진할 수 있었지만 현재의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하에서는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권이 바뀌면 지도 이념에 따라 개혁정책이 변질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국민들을 편하게 하고 새로운 권익을 신장하기위한 방편이라는 대전제하에서 큰 틀에서의 포용정책이 필요하다 하겠다.

 

Ⅱ. 성공한 개혁 - 아젠다를 제시하라

논어의 자치학을 쓴 강형기 교수는 행정의 최우선을 '이름을 바로 잡는 것[正名]' 즉,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 책에서도 개혁의 제1조건으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공감할수 있는 구체적인 아젠다의 제시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삼국통일의 아젠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춘추(태종 무열왕)와 김유신의 개혁사례를 들고 있다. 삼국 중 가장 변방이고 약소국가였던 신라가 어떻게 막강 고구려, 백제와의 통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나에 초점을 맞추고 그 성공요인을 삼국통일이라는 아젠다를 제시한 것에서 찾고 있다.

김춘추는 자신의 딸이 백제침공으로 죽임을 당하는 개인적 비극으로 처음에는 백제멸망에 목표를 두고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에 심한 굴욕을 당하게 된 김춘추는 고구려까지 포함된 삼국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된다.

이를 위해 김유신 등 신진개혁세력을 흡수하여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라벌 진골세력의 쿠데타(선덕여왕 추출계획)를 진압하는 주체가 된다. 이를 통해 대세를 장악하고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삼국통일이라는 원대한 아젠다를 백성들에게 제시하고 삼국통일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한다.

당시 동북아 패권을 두고 고구려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당을 끌어들여 군사동맹을 맺고 당의 체제를 도입하여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러한 대내외적 기반을 토대로 권력을 장악한 김춘추는 진골세력 최초로 왕위에 올라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비록 당의 힘을 빌려 통일하였다는 후대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당시 신라의 삼국통일은 두 강대국과 싸워 이룩한 빛나는 성취였다. 이는 삼국통일이라는 일관된 아젠다를 제시하여 국민들 다수의 동의를 얻고 참여시켰으며 새로운 비전을 실현할 신 주류가 형성 목숨을 걸고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자왕의 아젠다 부재

의자왕의 경우 즉위 초에는 신라를 공격하여 많은 성을 빼앗고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맺어 백제 부흥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백제부흥 아젠다는 왕권강화라는 방향으로 전도되어 호족들의 강렬한 반발에 부딪치며 중앙-지방간 의견소통이 단절되고 왕의 명령이 서지 않은 불안한 정국을 형성함으로써 결국 패망을 자초하게 된다.

이는 백제부흥이라는 원대한 아젠다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왕실의 권력 강화에 치중함으로써 호족들과의 관계에서 명분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해 실패하고 만 것이다.

 

아젠다가 실종된 숙종의 왕권강화책

숙종은 송시열을 비롯한 거대 정당(정치집단)인 서인의 견제 속에 14세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언제 왕위를 뺏길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로 출발하였으나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숙종은 어린나이에도 왕권강화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려 하였다. 당시의 정치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남인과 서인의 충성심을 유발하는 견제책으로 왕권을 강화해 나가면서 저항세력을 제거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파들은 미인계(장희빈의 후궁추천)같은 권모술수를 동원하며 정권장악에 혈안이 되고 하루아침에 정권이 바뀌면 반대정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상평통보 발행 등 상업개혁을 통한 경제발전에 상당한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강화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스캔들이나 의전문제들을 갖고 말싸움이나 하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보임으로써 향후 명분싸움과 당파싸움을 격화시키는 요인을 만드는 우를 범하였다고 본다.

저자는 현실의 이념적 계급담론을 당시의 상황과 비교하며 우려하고 있는데 해방 후 50여년간 고착된 반공이데올로기의 두터운 벽을 하루아침에 허물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정한 화해와 대통합의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Ⅲ. 개혁의 성공요건 - 제도 . 생활개혁

개혁의 두 번째 성공요인으로 제도개혁과 생활개혁을 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려 광종의 과거제도 도입을 통한 사회개혁과 조선조 100년 이상 끌어온 대동법 세제개혁을 들고 있다.


신분보다 능력을 우선한 고려 광종의 개혁

고려초 광종이 즉위할 때는 개국공신 등 호족 층의 세력이 법위에 군림할 정도로 막강하여 국가권력과 이권을 독점하는 불안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광종은 중국(후주)의 과거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능력있는 신진세력을 대거 영입, 자연스럽게 물갈이를 단행하였다. 또한 호족들의 부의 원천인 사노(私奴)의 정비를 위해 노비안검법을 제정, 부당한 사노를 양인화 함으로써 국민적 지지와 호족을 견제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광종은 질서 유지를 정당한 법의 근거에 처리하여 잘못된 관행에 대한 고발을 활성화하고 이를 근거로 심판하는 명분을 쌓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회전반의 개혁에 기득권의 반발이 조직적으로 이루어 졌다. 고려사를 보면 광종의 개혁에 대한 문제점을 신랄히 비난하고 있는데 이는 많은 부분 왜곡된 것으로 현대판 언론조작을 통한 기득권의 저항이라 할 것이다.

광종의 개혁은 호족 등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을 샀으나 절대 다수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광종은 왕권강화라는 체제유지의 필요성에 의해 호족세력 등 반대파를 숙청하였으나 법치주의에 의한 원칙을 지키고 단순한 왕실의 보호차원을 넘어 민중의 고통을 덜고 잘살기 위한 방편의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얻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백성의 고통을 절감시킨 대동법

대동법은 일종의 누진세제로 부자에게는 많이 빈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적게 세금을 부과하는 세제이다. 임란을 전후하여 피폐된 국가경제 속에서 과중한 세금부담으로 고향을 떠나는 유민이 대거 발생하고 심지어 한개 부락 전체가 없어지는 등 세제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인두세 성격의 균등세제 적용의 폐단에 따른 문제점으로 이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국가 존립자체가 위협받게 되자 임란 직후 광해군 원년 경기도 지방에서 새로운 세제를 시범 실시 후 100년이 지난 숙종조에 전국에 확대 정착된 제도이다. 확대 정착까지 100여 년 동안 끌었던 것은 그만큼 양반 지주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처음 주창한 사람은 중종조의 유명한 개혁가 조광조로 수천가지에 달하는 공납을 토지면적에 비례하여 쌀로 받는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을 주창하였는데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 광해군 즉위년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에 의해 광해군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 대동법의 도입은 광해군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어쩌면 이를 통해 조선왕조 존립의 연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정해본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세제의 대폭적인 개편을 두고 일부에서 세금 폭탄이라는 신조어 까지 만들어 일반 서민들도 세금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데 부동산세제의 실질적인 세 부담자가 상위 2-3%대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집권층의 추진의지 미흡으로 실패한 균역법

대동법이 10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전국시행으로 성공한 케이스라면 양반자제의 병역면제 폐단을 개선하고자 하였던 균역법은 강력한 사후관리의 미흡과 형식적인 추진으로 실패한 사례이다.

당시 군역(양역)제도는 양인이 맡았는데 병역의 의무를 지는 대신에 포(布:무명이나 베)를 받고 면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군역의 폐단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영조시대 병조판서 홍계희의 균역에 대한 보고서에 잘 들어나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민의 4/5가 군역에서 면제되고 남의 토지를 소작하는 전호(佃戶)들만 군역을 부담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양반자제의 병역의무는 당시 분위기로서는 불가능하여 대안으로 영조는 양반가구당 포를 받는 호포론(戶布論)과 토지면적(結)당 포를 징수하는 결포론(結布論)중 한 가지를 시행하려 제안하였으나 양반들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대신 양인들의 군포를 반으로 줄이고 부족한 액수를 왕실과 양반이 부담하는 절충안이 채택되었는데 이것이 균역법(均役法)이다. 이러한 미봉책은 양반에 대한 과세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양반의 몫을 소작료 인상으로 소작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소작인의 부담만 과중시키는 부작용 등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양반층이 고통을 분담하려는 성숙된 의식이 부족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권의 강력한 시행의지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균역법의 실패는 급격한 국력쇠퇴를 가져와 민란과 외세의 침입을 통해 조선의 패망을 앞당겼는데 기득권을 갖고 있는 양반세력이 특권만 누리려 하다 오히려 화를 입은 결과이지만 일제치하에서도 일제에 협조한 양반계급은 여전히 보호를 받으며 부를 누린 반면 더 큰 고통을 겪은 것은 일반 백성들이어서 더 씁쓸하다.

지금도 지배층이 일반인에 비해 턱없이 높은 병역면제와 외국국적을 통한 병역기피, 소득에 비해 턱없이 적게 세금을 내고 있다는 불신과 의혹은 여전하다. 세제 개혁을 통해 부자들에 세금을 늘리려 할 때 여론조성 등을 통한 조직적인 반발로 저항하는 현실은 기득권의 혁파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고 역사는 실로 일반 대중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회의를 갖게 한다.



Ⅳ. 성공한 개혁 군주들 - 태종.광해군.정조

이와 같은 개혁의 요건을 잘 활용하여 성공한 개혁군주로 저자는 태종, 광해군, 정조를 들고 있다.


악역을 자청한 개혁군주 태종

태종은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공신들의 전횡이 자칫 국가 기본질서를 무너뜨릴 것을 우려하여 이를 막기 위해 악역을 자청한 인물이다. 태종은 철저한 원칙을 세워 자신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척신들마저 가차 없이 숙청하여 세종조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기반을 닦았다.

태종이 철혈제왕노릇을 하였으면서도 역사적 평가를 받는 것은 공신숙청에 예외 없는 원칙을 적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후궁의 잘못을 법에 따라 가차 없이 벌하는 엄격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대판 공신들은 선거 참모 등 정권창출에 기여한 인사일 것이다. 옛 중국 한나라를 통일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장량(장자방)이 통일 후 고조유방 곁을 미련 없이 떠난 이유는 새로운 창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예에서 보듯이 공신그룹은 청탁이나 이권개입 등 최고책임자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하며 철저한 자기 쇄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익을 우선한 실용외교 개혁가 광해군

광해군은 정권말기에 인목대비 폐모와 서제(庶弟)를 죽이는 등 소위 패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인 성리학의 명분에 의해 쿠데타로 밀려났지만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개혁을 이끈 성공한 군주의 한사람이었다. 국방외교에 있어 청나라의 위협에 따른 명나라의 거듭된 파병요청에 대해 보은국이라는 사대명분보다 실질적인 패권국가인 청나라와의 관계를 우선하는 국익 외교를 펼쳐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 후 쿠데타 세력인 인조정권의 숭명반청 기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무고한 백성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국가적 치욕을 초래하였다.

현재의 국방외교 상황도 북핵을 둘러싼 실로 미묘한 입장에 처해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소의 대륙세력과 미.일 해양세력의 각축장에 위치해있어 우리의 뜻에 반해 국가 운명이 결정되었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과거 임진왜란당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피하고자 국익에 따라 파병결정한 명나라에 대해 은혜의 나라라고 떠받드는 우를 범하였듯이 숭미 차원의 대미 의존적인 외교보다 한반도 남북공조의 틀 속에서 냉정하게 국익을 우선하는 국방외교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화성신도시의 꿈 - 정조의 개혁

저자는 많은 부분 정조의 개혁을 가장 바람직하고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조는 막강한 집권세력인 노론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어서 집권하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노론세력의 견제가 그만큼 심했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즉위즉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을 물어 관련자를 법에 따라 숙청하고 현대판 행정수도라 할 화성(수원)신도시 건설에 매진하였다. 화성신도시는 노론의 서울이 아닌 만 백성의 서울이 될 도시를 꿈꾸며 정약용에 설계를 맞겨 당시 세계최고 수준의 과학적 건축술로 축조되었다.

화성신도시 건설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후 뉴딜정책과 같이 국가주도의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정조는 당시 획기적으로 강제 노역이 아닌 모집인부식 공사로 일거리 창출을 통해 경기 부양을 꾀했으며 일정구간별로 공사금액을 정해 맡기는 도급제 방식의 공사를 추진하였다. 또한 현대판 혁신도시와 같이 특화하여 서울에 버금가는 상가를 조성하고 화성주위 대규모 개간사업과 저수지를 조성 대단위 농장을 일궈 병농일치의 시범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화성신도시 건설과 대규모 농장건설 등에 양반층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정조는 노론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집권층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열수 없다고 생각하고 화성신도시 건설을 통한 상업혁명, 농업혁명으로 도약을 꿈꾸었다. 정조는 청나라를 통해 입수한 서구 문물과 서구열강 등의 정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였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행정중심 복합도시도 세계최고의 경쟁력있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정조적 발상이 요구된다 하겠다.


Ⅴ.개혁 성패 - 왜 개혁은 실패하였는가?

골품제로 무너진 통일신라

개혁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은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골품제라는 폐쇄적 신분제로 패망한 통일신라를 들고 있다. 통일신라 말기 세계적 석학이었던 최치원이 당나라의 명망있는 벼슬을 버리고 신라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귀국하였으나 6두품이라는 이유로 등용이 좌절되었다. 폐쇄적인 신라는 최치원의 재능을 활용하지 못한 것처럼 아집과 독선의 무능에 빠져 국가를 지탱하지 못하고 결국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지연, 학연, 혈연의 인위적 차별이 현대판 골품제는 아닐까? 이러한 지연, 학연, 혈연을 과감히 끊고 능력있는 인사가 대우받는 합리적인 사회시스템이 요구된다.


과거에 발목 잡힌 영조

영조는 적자가 아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자신의 출생과 노론의 덕(독살의혹이 있는 경종의 조기 퇴임)으로 왕위에 오른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영조는 당쟁의 폐해를 막고자 탕평책을 펼치고 백성을 위해 균역법을 처음 시행하는 등 현군소리를 듣는 왕이다. 그렇지만, 경종의 사망과 관련 자신이 연루된 것을 바로잡는데 집착하여 국론이 갈라졌고 노론의 정치공작에 말려 사도세자를 죽음에 몰아넣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영조의 과거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개혁의 실패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보고 있는데 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우선 영조는 경종의 사망(독살설)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는 여론을 집요하게 바로잡으려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는 대통령개인이나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닌 친일 민족반역행위와 인권탄압 등 반민주 행위에 대한 올바른 역사평가로 당사자의 진정한 반성이나 회개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덮어 둘 일은 아니라고 본다. 포용의 전제조건은 한번쯤은 용서를 빌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용서는 하되 후손들의 지표로 삼는 역사의 기록이 필요한 것이다.


대원군의 빗나간 개혁 방향

대원군의 가장 큰 실패는 주변국과의 역학관계를 읽지 못한 폐쇄성이다. 19세기말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왕권강화와 성리학을 통한 이상국가 실현이라는 빗나간 아젠다로 쇄국정치를 고집함으로써 결국 외세에 의한 강제개방을 당함으로서 자주적인 근대화 길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근 자유무역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FTA에 일부 급진적인 진보그룹에서는 한미FTA가 한국시장을 피폐화시키고 미국에 종속적인 경제로 전락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지만 자원 부족을 두뇌수출과 고부가가치의 상품수출로 극복함으로써 활로를 찾고자 하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을 대표하는 미국자유무역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상국가를 꿈꾼 조광조

조광조의 개혁실패의 원인은 급진적 개혁의 추진에 있었다. 중종조 훈구파의 득세를 견제하기위해 등용된 조광조는 능력있는 신진 사림파를 대거 등용함으로써 개혁의 발판을 만들었다. 하지만 훈구파를 자극하는 획기적인 녹훈삭제 조치(중종반정 정국공신의 65%에 달하는 76명 녹훈삭제)는 왕까지 부담을 느껴 결국 누명을 쓰고 사사되고 만다.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림의 거두 이황, 이이에 의해서도 상반되게 평가되고 있데 등소평의 흑묘백묘론과 같이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통한 점진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광해군의 실패사례(반정의 명분을 준)에서 보듯이 그 시대 조류(潮流)에 어긋나지 않는 개혁의 명분과 현실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겠다.


개혁의 걸림돌-정치권의 사익추구

당쟁의 발생요인을 성호 이익은 붕당론(朋黨論)에서 “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여러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일반 대중은 그들(정당)의 싸움에 덩달아 편을 들어 반대나 화답을 하지만 싸움끝의 이익은 싸움에 승리한 정치인이 가져간다고 꼬집고 있다.(붕당론)

사람들은 이(利)를 추구하기 위해 벼슬을 구하고 벼슬길에 오르면 죽음을 무릅쓰고 당쟁에서 이기려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정치인의 목적이 사익실현이 아니라 공공선이 될 수밖에 없도록 정치구도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 배정에서 소위 이권 있는 상임위에 배정 받으려 혈안이 되고 지방의회에서 조차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새겨들을 만 하다.

 

Ⅵ. 마치는 글

화해의 정치가 되기 위한 전제

숙종조 입궐하지 않고 향리에서 우의정까지 제수 받은 존경받은 정치인 윤증은 화해의 정치를 주창하며 상생정치와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발전을 역설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상생의 정치는 그릇된 정치적 판단으로 피해를 본 상대방의 원한을 풀어주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우리사회가 참다운 화해를 통한 상생의 정치가 되려면 반민족적 친일행위에 대해 불가피한 경우라는 변명보다는 진솔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인권탄압 등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선의의 국민에 대한 당사자의 진심어린 사죄와 이에 대한 용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서민)의 편에 서야...

이책을 읽고 나서 과연 개혁은 왜 필요한가 다시한번 반문하여 본다. 집권자의 필요성에서 인가, 진정 국민(백성)을 위하는 길에서 인가?

저자는 미래지향적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더 나가 진정한 개혁은 국민을 위하는 대승적 개혁만이 정당성을 부여 받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받고 국민의 뜻에 따라 임용되는 공직자는 당연히 국민을 최고의 고객으로 하는 봉사자이자 심부름꾼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의 모든 행위는 국민을 위하는 개혁적 사고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공직자는 진정한 국민의 편이어야 한다.


과연 공직자는 진정한 국민의 편을 자처할 수 있겠는지? 우리나라 개혁의 가장 큰 실패요인과 걸림돌은 국민의 편, 특히 서민의 편을 자처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의 편임을 거부하거나 잠재적으로 일반국민(서민층)과는 다르다는 우월의식은 갖고 있지 않은지 반문해보고 싶다.

안정적 수입을 통한 경제적 안정이 자칫 스스로를 상류층(중류층)이라는 우월감속에 서민을 위한 개혁적 정책이 자신에게 부담이 되어 제동을 걸려 하지는 않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상생의 정치는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왜냐하면 지나친 기득권의 전횡과 횡포는 역사적으로 붕괴되거나 축출되고 심지어 나라의 패망에 이르는 길임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개혁정책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들춰보고 이를 거울삼아 올바른 공직자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 국민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열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서민층을 애틋하게 보살피는 공무원의 자세가 절실하다고 본다.

by 대자유 | 2006/10/20 10:31 | 책 읽는 동네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